네덜란드가 낳은 진짜 킬러, 로이 마카이
1. 공격수의 정석
마카이는 1993년 만 18세의 나이로 피테서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신체 조건을 자랑했던 마카이는 1994-1995 시즌에 리그 11골을 잡아내며 프로 데뷔 2년만에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피테서의 '주포'로 빠르게 성정한 마카이를 주목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1997년 스페인 클럽 페네리페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빅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페네리페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마카이는 1999년에 운명의 팀 데포르티보로 이적한다.
영리한 움직임과 정교한 양발 활용 능력, 과감성 등이 더해진 마카이는 모든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유럽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2002-2003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무려 29골을 잡아내며 유로피언 골든슈를 수상하기도 했다.
절정에 오른 마카이에게 독일의 거인 바이에른 뮌헨이 손을 내밀었다.
20003년에 뮌헨으로 향한 마카이는 팀의 주력 공격수로 군림하며 총 183경깅에서 103골을 넣으며 사랑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뮌헨에서 서서히 자리를 잃어갈 위기에 처하자, 2007년에 자국의 클럽 페예노르트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 마지막을 이어갔다.
페예노르트에서도 자신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발휘한 마카이는 2010년에 프로 선수로서 은퇴했다.
2. 최고의 순간 - 2002~20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마카이는 공격수가 갖춰야 할 대부분의 덕목을 가진 선수였다.
기민한 발로 상대 뒷공간을 공략해 가볍게 득점을 잡아냈고, 훌륭한 위치 선정으로 패널티 박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강점이 모두 발현된 경기가 바로 2002-20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뮌헨 원정을 떠난 마카이는 홀로 3골을 잡아내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3골 모두 완벽했는데, 올리버 칸의 가랑이 사이를 공략한 세 번째 골은 실로 대단했다.
그 어렵다는 뮌헨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한 마카이는 당연히 유럽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랐다.
조별리그 5차전에서도 마카이에게 실점을 허용한 뮌헨은 결국 다음 시즌 그를 영입했다.
3. 최악의 순간 - 2009~2010 시즌 KNVB컵 결승전 2차전
마카이는 2009-2010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해당 시즌 리그 최종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듯 했다.
허나 모종의 이유로 KNVB컵 결승전이 단판이 아닌 홈&어웨이로 치러지면서 은퇴를 미루고 경기에 나섰다.
아약스에게 1차전에서 0-2로 패한 페예노르트는 마카이를 필두로 2차전 홈 경기에서 반전을 노렸다.
그러나 마카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침묵했고, 루이스 수아레스가 맹활약한 아약스에게 1-4로 패했다.
페예노르트는 마카이의 공식 은퇴 경기에서 최대 라이벌 아약스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페예노르트는 물론이고 마카이에게도 최악의 순간이었다.
4. 종합적인 평가
마카이는 국가대표팀을 포함해 프로 통산 679경기에서 320골을 터뜨렸다.
마카이가 당대를 대표하는 공격수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가 실력에 비해 국제적인 명성을 높게 쌓지 못한 원인은 역시 국가대표팀에서 중용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드 반 니스텔로이와 파트릭 클루이베르트가 마카이의 국가대표팀 경쟁 상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마카이는 자신이 속했던 모든 클럽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과시한 선수다.
그의 득점력은 많이 이들을 기쁘게 했다.
마카이는 지금이라도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공격수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