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현주소와 미래①
2021년 가을, 세계 속에서 한국 축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축구 변방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성장했고, 세계 축구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축구 약소국과 축구 강국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한국 축구입니다.
반 세기가 넘도록 한국 축구는 세계 축구계 중심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과연 한국 축구는 원하는 바를 이룩할 수 있을까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축구 강대국을 향한 한국 축구의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살펴보고, 이를 근거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
(1)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
(1-1)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초창기 역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축구가 한반도에 전해진 시기는 1882년입니다.
첫 발걸음 이후 50년간 대중들에게 다가간 한국 축구는 1933년 대한축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축구협회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10년부터 시작된 일제 강점기로 인해 당시 조선인들은 조선인들로만 구성된 팀을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모든 것이 일본에게 귀속된 상황이기에 발전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공식적인 국가대표팀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선인들은 조선축구단과 무오축구단을 중심으로 나름의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1935년에는 당시 조선인으로 구성된 팀 중 최강으로 평가를 받던 경성축구단이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현 일본 FA컵)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성축구단 소속 선수이자 한국 축구에 있어 불멸의 인물인 김용식 선생은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올림픽에서 일본은 스웨덴을 3-2로 잡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세계 축구 역사에서 이변을 논하는데 있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경기 중 하나입니다.
김용식은 해당 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하며 역사를 같이 썼습니다.
이후 경성과 평양을 축으로 성장하던 조선 축구는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알려집니다.
허나 온전한 국가가 아니었던 조선은 특별한 결과물을 가져오기 힘들었고, 일본이 1941년부터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발전을 멈췄습니다.
다행히도 1945년에 조선이 광복을 맞이하면서 한국 축구계도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이후 체계화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탄생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항해를 알렸습니다.
개인적 평가
한 국가의 초기 축구 역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복합적인 결과입니다.
일단 현대 축구의 발상지인 영국과 지리적·문화적으로 밀접한 국가는 축구를 이른 시기에 받아들이고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더불어 영국에게 문호를 개방한 국가들도 축구적으로 혜택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경제적인 여건과 국가적인 안정성이 더해지면 더욱 빠르게 자국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축구에 있어서도 강대국이 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당시 조선은 매우 불리한 위치였습니다.
조선은 축구 강대국들과 교류 자체가 어려웠고, 1910년에는 일본에게 주권을 잃어버리면서 자생적인 발전의 길이 원천봉쇄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체적인 축구 클럽 창단 및 경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역사를 쌓아 왔습니다.
여러 원동력이 있겠지만, 일제강점기에 2,500만에 육박했던 조선인 인구가 축구 발전에 있어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수의 인원이 같이 협동하고 경쟁하는 축구라는 종목 자체의 특성도 당시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이 한데 뭉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매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최소한의 명맥을 이어갔다는 점만으로도 한국 축구 초창기 역사와 이를 일궈낸 인물들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1-2)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역사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1954년 큰 분기점을 맞이합니다.
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일본과 치열한 경쟁 끝에 아시아에게 주어진 겨우 한 장의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헝가리와 터키에서 대패를 당했지만, 6·25 전쟁으로 어려운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대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계가 무량할 정도입니다.
이후 한국은 오랜 기간 월드컵에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에게 배정된 본선행 티켓 숫자가 현저히 부족했고, 그나마 가능성이 생긴 1970년대에는 이스라엘과 호주 및 중동 국가들에게 밀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세계 무대에 도전한 것은 1986년이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하며 32년만에 도전에 나섰지만, 높은 벽만 확인했습니다.
1986년부터 1998년까지는 눈물의 역사였습니다.
매번 승리를 다짐하며 월드컵에 참여했지만, 가능성만 확인하고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길고 길었던 고난을 끝내고 환희를 맛봤습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냅니다.
한국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2002년에 절정을 맞이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매번 대회에 참여하며 현재까지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것은 여전하지만, 어떤 팀이든 잡아낼 저력이 있는 국가로 평가를 받으며 나름의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물론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여전히 철저한 도전자이자 약자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개인적 평가
위에 언급했듯이 한국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진출을 통해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세계 축구 역사에 있어서도 6위에 해당할 정도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혹자는 경쟁 난이도가 높지 않은 아시아 대륙에서 일궈낸 업적이라며 폄하하지만, 주어진 규칙과 제도 안에서 정당히 쟁취한 결과물이기에 이런 평가는 매우 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2002년부터는 월드컵에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국가로 성장한 한국입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총 5개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한국은 총 20번의 본선 경기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6승 5무 9패입니다.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한국의 객관적인 전력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도 아닙니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 내로라하는 유럽의 강호들의 발목을 잡는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맞아 떨어지면 강렬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물어뜯는 한국의 힘은 이제 월드컵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됐을 정도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축구의 정점에 있는 월드컵이란 대회에 꾸준히 참여해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붉은악마'들에게 자부심을 선물하기에 충분합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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